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 왕국 (문단 편집) ==== [[하틴 전투]]와 [[예루살렘]] 상실 ==== 이 시기 십자군의 중요 군사 거점인 케락 영주인 [[르노 드 샤티용]]이 이슬람 상단을 습격하여 살라흐 앗 딘을 도발하였기에 중동에 전황이 드리워졌었다. 르노의 케락 성채는 선대 왕 풀크 국왕이 다마스쿠스와 이집트, 히자즈를 잇는 통로를 견제하기 위해 절묘한 지역에 쌓은 요충지였기에 이 곳은 무슬림군에게는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더욱이 1183년 리노는 홍해에 함대를 진수시켜 무슬림 순례자들이 셋다로 가는 통과 지점인 아프리카 해안의 아이답 항구를 위협했고, 무슬림 순례자 선박을 격침시켰으며 메카와 메디나를 위협하였다. 르노의 무슬림 지역에 대한 위협은 결국 살라흐 앗 딘의 누이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졌고 살라흐 앗 딘이 십자군 전쟁 수행 시기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살라흐 앗 딘은 대병력을 거느리고 본격적인 예루살렘 왕국 정복에 나섰다. 1187년 살라흐 앗 딘은 만 천의 군대를 이끌고 울트레주르뎅 지역으로 나갔고, 이에 맞서 십자군은 만 명의 군사를 집결시켰으며 양쪽 군대는 하틴의 뿔이라는 지역에서 일전을 벌였다. 이 [[하틴 전투]]에서 십자군은 대패했고, 사티용의 르노는 살라흐 앗 딘에게 처형당하고 기와 주요 기사들은 포로로 잡히거나 전사하는 신세가 된다. 하틴에서의 무슬림군의 승리는 이슬람사에 기록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이어 살라흐 앗 딘이 계획한 예루살렘 탈환을 위한 성공적인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십자군은 정예군을 잃게 되어 향후 살라흐 앗 딘의 지하드에 대적할 군사력을 보유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벨린의 발리앙]] 등 소수남은 기사들이 예루살렘 방어를 위해 분전하였으나, 압도적인 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벨린의 발리앙은 '자신의 백성들을 살려서 보내주지 않으면 양측의 성지를 죄다 때려부수고 도시 내의 무슬림을 싸그리 죽이고 우리도 죽겠다' - '그렇다면 당신들을 전원 보내주겠다' - '내가 몸값을 마련하지 못할 모든 기독교인들을 대표해 인질이 되겠다' - '그럼 내가 그들의 몸값을 전부 내주겠다'는 협상을 거쳐 예루살렘을 [[살라흐 앗 딘]]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후반부 예루살렘 공방전 바로 이 때를 배경으로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